빛나는세상/출석부

그대 쪽으로 스러지다 / 김율도

믈헐다 2022. 11. 14. 00:12

그대 쪽으로 스러지다 / 김율도

 

바람 불면 갈대는

바람을 등지고 쓰러진다

그대는 내 등 뒤에 있는데

바람 불지 않아도

나는 그대 쪽으로 쓰러진다

 

불빛이 환하면 불나비는

불쪽으로 스러진다

불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그대의 숨소리 하나만으로

나는 그대 쪽으로 스러진다

 

생을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커다란 의미를

찾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무심결에

새가 노을 속으로 스러지듯

그대 쪽으로 스러지고 싶다

 

*출처: 김율도 시집 그대에게 가는 의미, 율도국, 2019.

*약력: 서울 대광고등학교, 서울예술대학 광고창작과 졸업.

 

 

식물이나 동물이나 자연에 순응한다는 건 자연의 이치이다.

하물며 하잘 것 없게 여기는 벌레까지도 그렇다.

갈대는 바람이 부는 쪽으로 쓰러지고, 불나비는 불√쪽으로 스러지기 마련이다.

시인은 우리가 당연시 여길 수 있는 자연 현상을 사랑하는 사람과 조화시켰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그대 쪽으로 쓰러지고, 숨소리 하나만으로 그대 쪽으로 스러진다."

심지어 어느 날 갑자기 생의 큰 의미를 찾고 싶을 때는

"새가 노을 속으로 스러지듯 / 그대 쪽으로 스러지고 싶다"고 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참고

'스러지다'는 형체나 현상 따위가 차차 희미해지면서 없어지거나 불기운이 약해져서 꺼지는 것을 뜻한다.

'쓰러지다'는 힘이 빠지거나 외부의 힘에 의하여 서 있던 상태에서 바닥에 눕는 상태가 되는 것을 뜻한다.

'쪽'은 방향을 가리키는 의존명사이므로 반드시 띄어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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