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쪽으로 스러지다 / 김율도
바람 불면 갈대는
바람을 등지고 쓰러진다
그대는 내 등 뒤에 있는데
바람 불지 않아도
나는 그대 쪽으로 쓰러진다
불빛이 환하면 불나비는
불쪽으로 스러진다
불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그대의 숨소리 하나만으로
나는 그대 쪽으로 스러진다
생을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커다란 의미를
찾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무심결에
새가 노을 속으로 스러지듯
그대 쪽으로 스러지고 싶다
*출처: 김율도 시집 『그대에게 가는 의미』, 율도국, 2019.
*약력: 서울 대광고등학교, 서울예술대학 광고창작과 졸업.
식물이나 동물이나 자연에 순응한다는 건 자연의 이치이다.
하물며 하잘 것 없게 여기는 벌레까지도 그렇다.
갈대는 바람이 부는 쪽으로 쓰러지고, 불나비는 불√쪽으로 스러지기 마련이다.
시인은 우리가 당연시 여길 수 있는 자연 현상을 사랑하는 사람과 조화시켰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그대 쪽으로 쓰러지고, 숨소리 하나만으로 그대 쪽으로 스러진다."
심지어 어느 날 갑자기 생의 큰 의미를 찾고 싶을 때는
"새가 노을 속으로 스러지듯 / 그대 쪽으로 스러지고 싶다"고 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참고
'스러지다'는 형체나 현상 따위가 차차 희미해지면서 없어지거나 불기운이 약해져서 꺼지는 것을 뜻한다.
'쓰러지다'는 힘이 빠지거나 외부의 힘에 의하여 서 있던 상태에서 바닥에 눕는 상태가 되는 것을 뜻한다.
'쪽'은 방향을 가리키는 의존명사이므로 반드시 띄어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