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산사의 아침 / 이호준

믈헐다 2023. 2. 6. 02:47

산사의 아침 / 이호준

 

일찌감치 독경 마친 산새들

줄지어 탁발 나서는 아침

담장 뒤에 몸 숨긴 보리수나무

발끝으로 제 그림자 비빈다

바람도 없는데 저 홀로 법당 문 열고

백팔 배 올리는 풍경(風磬)

안개 돌아가자

밤새 하늘 어귀 정박해 있던 앞산

삐걱삐걱 노 저어 와

공양간 앞을 기웃거린다

 

*출처: 이호준 시집 티그리스 강에는 샤가 산다, 천년의시작, 2018.

*약력: 기자이자 논설위원, 시인이자 작가.

 

(남해 보리암)

 

산사에서 새들의 노래가 독경이라니 참 그럴듯한 표현이다.

먹이를 구하러 줄지어 나서는 모양새는 영락없이 탁발하는 모습이다.

아침 햇살에 "담장 뒤에 몸 숨긴 보리수나무 / 발끝으로 제 그림자 비빈다"

풍경은 백팔 배를 올리고, "밤새 하늘 어귀에 정박해 있던 앞산" 그림자는 

"삐걱삐걱 노 저어 와 / 공양간 앞을 기웃거린다"

매일 이렇게 산사의 아침이 밝아오는 정경은 그지없이 평화롭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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