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입춘 / 김세경

믈헐다 2023. 2. 7. 20:41

입춘 / 김세경

 

땅이 일어선다

첫돌 지난 땅이

일어선다

겨우내 젖 물고 있더니

아장아장 걸어 보겠다고

지나는 바람의 치마폭 붙잡고

“섰다 섰다 섰다”

첫 발을 뗀다

누가 일러 주지 않아도

서야 할 때를 안다

참 신통하다

혹한을 딛고 일어서는

맨발 아기의 첫 인사

스물스물 발바닥이 가렵다

 

*출처: 김세경 시집 23, 버스 안에서 듣다, 월간문학, 2004.

*약력: 1999년 월간 '한맥문학'을 통해 등단한 김세경 시인의 시집.

 

(빈센트 반 고흐의 '첫걸음마')

 

아기가 엄마의 치마폭을 붙잡고 첫발을 떼는 순간 기쁨의 함성을 지르듯이,

겨우내 젖 물고 있던 땅도 바람의 치마폭을 붙잡고 일어서면 모두가 환호성을 칠 것이다.

이렇듯 사람이나 자연은 누가 일러 주지 않아도 서야 할 때를 아니 얼마나 신통한 일인가.

아장아장 걷던 아기가 일어서는 것처럼 땅이 일어서는 것이 입춘이라니

그래서 '입춘立春'은 '들 입(入)'이 아니라 '설 립(立)이 되는 것인가.

 

'빛나는세상 > 출석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프지만 아프지 않아 / 김율도  (0) 2023.02.09
봄밤 / 이면우  (0) 2023.02.09
한편의 남의 시와 한 줄의 내 글 / 김용택  (0) 2023.02.07
산사의 아침 / 이호준  (0) 2023.02.06
취생몽사 / 이서영  (0) 2023.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