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 김세경
땅이 일어선다
첫돌 지난 땅이
일어선다
겨우내 젖 물고 있더니
아장아장 걸어 보겠다고
지나는 바람의 치마폭 붙잡고
“섰다 섰다 섰다”
첫 발을 뗀다
누가 일러 주지 않아도
서야 할 때를 안다
참 신통하다
혹한을 딛고 일어서는
맨발 아기의 첫 인사
스물스물 발바닥이 가렵다
*출처: 김세경 시집 『23시, 버스 안에서 듣다』, 월간문학, 2004.
*약력: 1999년 월간 '한맥문학'을 통해 등단한 김세경 시인의 시집.
아기가 엄마의 치마폭을 붙잡고 첫발을 떼는 순간 기쁨의 함성을 지르듯이,
겨우내 젖 물고 있던 땅도 바람의 치마폭을 붙잡고 일어서면 모두가 환호성을 칠 것이다.
이렇듯 사람이나 자연은 누가 일러 주지 않아도 서야 할 때를 아니 얼마나 신통한 일인가.
아장아장 걷던 아기가 일어서는 것처럼 땅이 일어서는 것이 입춘이라니
그래서 '입춘立春'은 '들 입(入)'이 아니라 '설 립(立)이 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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