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빗소리 / 손택수
탁구공 튀는 소리다
스님들도 목탁대신
탁구를 칠 때가 다 있네
절집 처마 아래 앉아 비를 긋는 동안
함께 온 귀머거리 여자는
영문을 모른 채 그저 숫저운
미소만, 미소만 보이는데
通度라면 인도까지 갈까
저 빗소리, 내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는
그 머나먼 서역까지 이를까
흙이 아프지 말라고,
흙의 연한 살이 다치지 말라고
여자는 처마 아래 조약돌을 가지런히
깔아주고 있는데, 그
위에서 마구
튀어 오르는 빗방울,
저 빗방울
하늘과 땅이 주고받아 치는 탁구공 소리다
*출처: 손택수 시집 『호랑이 발자국』, 창비, 2003.
*약력: 1970년 전남 담양 출생, 경남대 국문과와 부산대 대학원 국문학과 졸업.
절집 처마 아래 두 남녀가 비를 피하고 있다.
남자는 "스님들도 목탁대신 / 탁구를 칠 때가 다 있네" 라며 처마 밑의 어색함을 짐짓 덜어보려고 한다.
"함께 온 귀머거리 여자는 / 영문을 모른 채 / 그저 숫저운 미소만, 미소만 보이는데"
행여 "흙의 연한 살이 다치지 말라고 / 여자는 처마 아래 조약돌을 가지런히 / 깔아주고 있는데,
그 / 위에서 마구 / 튀어 오르는 빗방울," "하늘과 땅이 주고받아 치는 탁구공 소리다"
이 얼마나 재미있는 표현인가.
땅을 박차고 튀어 오르는 빗방울이 내 가슴까지 튀어 오르게 한다.
마치 시인과 내가 탁구공을 치듯이 말이다.
'빛나는세상 > 출석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랑캐꽃 / 조운 (0) | 2023.02.21 |
---|---|
손등 / 고영민 (0) | 2023.02.20 |
버들강아지 / 문정희 (0) | 2023.02.17 |
꽃을 곁에 두기 위해서 / 김율도 (0) | 2023.02.16 |
대작 對酌 / 이동재 (0) | 2023.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