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해장아파트 / 전윤호

믈헐다 2023. 11. 24. 23:32

해장아파트 / 전윤호

 

평생 취해 살다

속 버리고 이사온 동네

휘청거리는 안개 자욱하고

푸른 소주병 굴러다니는 바람

이제 술을 끊어야겠네

내 속을 다 들여다봤으니

취하지 않아도 잠들고

한밤에 목마르지 않더군

이유 없이 시비 걸고

뒤에서 욕하지 않는

늙고 지친 주민들끼리

승강기 기다리는 일 층에서

따뜻한 인사 나누네

 

*출처: 전윤호 시집 슬픔도 깊으면 힘이 세진다, 북인, 2020.

*약력: 1964년 강원도 정선 출생, 동국대학교 사학과 졸업, 1991 현대문학으로 등단.

 

 

 

아파트 이름이 ‘개나리, 장미, 목련, 비둘기, 무지개, 행복, 복지’ 따위의

부르기 좋고 외우기 쉬운 것이 점차 어려운 이름으로 바뀌는 이유는 뭘까.

시어머니 찾아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우스갯소리도 있고,

좀 있어 보이기 위함이라는 말도 전해진다.

아무튼 보금자리는 어머니의 품 안처럼 아늑하여야 할 것인데,

화자가 살았던 아파트는 그렇지 못했던 모양이다.

오죽하면 새 둥지를 튼 곳을 ‘해장아파트’라 하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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