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아주 낮은 소리 / 서수자

믈헐다 2021. 10. 20. 23:21

아주 낮은 소리

 

플라스틱 바가지에

탯줄 끊긴 완두콩들이 떨어진다

독도그르 독도그르

아이들을 받아내는 소리

 

누구의 손이 왔다 갔나

바람도 없는데 꽃이 피고 꽃잎 떨어지는 소리

박꽃에 달빛 쌓이는 소리

 

안타까워라

움켜도 움켜도 한 줌 손을 빠져나가는

물모래 소리

 

먼 사람이 내게 와 새벽이 올 때까지

하룻밤을 조곤조곤 풀어내는 소리

아침 안개 속에 연꽃 봉오리 터지는 소리

 

비 그치고 날 들자 낙수 구멍에 낙수 소리

이어졌다 끊어졌다

아무도 없는 집을 한나절 지키네

 

두레상에 숟가락 부딪는 소리

고등어 토막 슬쩍 밀어놓는 소리

 

쉼 없이 흘러가는 첫새벽 강

내 몸에 갇힌 시간이 몸 비트는 소리

 

걱정 마라 걱정 마라

내 머리맡에 앉아

잠들 때까지 어루만져주는

아주 낮은 소리

 

*출처: 서수자 시집 『아주 낮은 소리』, 천년의 시작, 2018.

(사진은 다음카페 빛나는 세상 나눔 공간에서 발췌)

 

화자는 일상의 소리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바람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듣는다.

낮은 소리는 보잘 것 없는 것 같지만 아주 위대하다.

그 소리에는 생명의 경이로움이 있고, 감사함이 있고, 깊은 울림과 진한 떨림이 있다.

그 소리는 찾는 이와 들을 줄 아는 이만 듣는다.

눈으로도 보이지 않고, 귀로도 들리지 않고, 오직 맑은 영혼으로만 접할 수 있는 신비이기 때문이다.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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