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지 / 오탁번
할머니 산소 가는 길에
밤나무 아래서 아빠와 쉬를 했다
아빠가 누는 오줌은 멀리 나가는데
내 오줌은 멀리 안 나간다
내 잠지가 아빠 잠지보다 더 커져서
내 오줌이 멀리멀리 나갔으면 좋겠다
옆집에 불나면 삐용삐용 불도 꺼주고
황사 뒤덮인 아빠 차 세차도 해주고
내 이야기를 들은 엄마가 호호호 웃는다
-네 색시한테 매일 따스한 밥 얻어 먹겠네
*출처: 오탁번 시집 『벙어리장갑』, 문학사상사, 2002.
(통영 장사도 해상공원 '오줌 싸는 아이' 조형물)
남자들은 가끔 소변을 보면서 오줌 빨을 힘껏 쏘아본다.
경쟁심리가 발동하여 더더욱 멀리 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한다.
그런 남자들의 장난기가 고스란히 시에 담겼다.
아주 터무니없는 과장법도 동원된다.
오줌발로 불을 끄고 세차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어린 화자로서는 상상 가능한 상황이다.
이 시에서의 백미는 단연코 마지막 연에 있다.
호호호 웃는 엄마의 웃음 속에는 많은 것이 녹아 있다.
가장 원초적인 아내의 속내이기도 하고,
아들이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리길 바라는 어머니의 염원도 담겨 있다.
오탁번 시인의 해학은 외설적이고 속물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 속에는 시의 또 다른 진실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은가.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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