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걸레질하는 여자 / 김기택

믈헐다 2021. 11. 3. 01:14

걸레질하는 여자 / 김기택

 

걸레질을 하려면 무릎을 꿇어야 한다.

허리와 머리를 깊이 숙여야 한다.

엉덩이를 들어야 한다.

무릎걸음으로 공손하게 걸어야 한다.

큰절 올리는 마음으로

아기 몸의 때를 벗기는 마음으로 닦지 않으면

방과 마루는 좀처럼 맑아지지 않는다.

어디든 떠돌아다니고 기웃거리고

틈만 보이면 비집고 들어가 눌러앉는 먼지들,

오라는 곳 없어도 밤낮없이 찾아오고

누구와도 섞여 한몸이 되는 먼지들,

하지만 정성이 지극하면 먼지들도 그만 승복하고

고분고분 걸레에 달라붙는다.

걸레 빤 물에 섞여 다시 어디론가 떠난다.

그렇게 그녀는 방과 마루에게 먼지에게

매일 오체투지五體投地하듯 걸레질을 한다.

 

*출처: 김기택 시집 『사무원』, 창작과비평사, 1999.

*약력: 1957년 경기 안양시 출생, 중앙대학교 영문과 졸업. 경희대학교대학원 국문과 박사.

(그림 출처: 국제신문, 2012.02.16.)

 

걸레질을 통해 가족을 위한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무엇이든 이렇게 지극정성을 다하여 걸레질 하듯이 닦아내는 일이야말로 삶의 가장 기본적인 일이다.

비단 집 안에만 먼지가 끼는 것은 아니라 내 마음에도 먼지가 끼게 되어 있다.

내 마음에 낀 먼지를 닦아내는 일은 자기 수양이 필요하다.

어쩌면 내 마음에 낀 먼지를 없애기 위해선 일평생 걸레질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참고

‘오체투지(五體投地)’는 불교에서, 절하는 법의 하나.

먼저 두 무릎을 땅에 꿇고, 두 팔을 땅에 댄 다음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는 것을 말한다.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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