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가을 / 이재무
움켜쥔 손 안의 모래알처럼 시간이 새고 있다
집착이란 이처럼 허망한 것이다
그렇게 네가 가고 나면 내게 남겨진 가을은
김장 끝난 텃밭에 싸락눈을 불러올 것이다
문장이 되지 못한 말(語)들이
반쯤 걷다가 바람의 뒷발에 채인다
추억이란 아름답지만 때로는 치사한 것
먼 훗날 내 가슴의 터엔 회한의 먼지만이 붐빌 것이다
젖은 얼굴의 달빛으로, 흔들리는 풀잎으로, 서늘한 바람으로,
사선의 빗방울로, 박 속 같은 눈꽃으로
너는 그렇게 찾아와 마음의 그릇 채우고 흔들겠지
아 이렇게 숨이 차 사소한 바람에도 몸이 아픈데
구멍 난 조롱박으로 퍼 올리는 물처럼 시간이 새고 있다
*출처: 이재무 시집 『몸에 피는 꽃』, 창작과비평사, 1996.
*약력: 1958년 충남 부여 출생, 한남대 국문학과, 동국대 국문학과 석사과정 수료.
손 안의 모래알처럼 시간이 새고 있다는 말이 마음에 와닿는다.
물처럼 시간이 새고 있으니 가을이 모래성처럼 사라져가니,
마냥 지금일 것만 같아도 내일이면 과거가 되고 만다.
집착도 집착이지만 세월의 집착이란 이처럼 허망한 것이다.
그렇다고 사뭇 그냥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가을만큼 아름답고 완벽한 계절이 또 있을까.
독서, 글쓰기, 여행, 사색, 사랑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가을이다.
이 모든 것들의 소중한 기억들을 내 삶의 갈피에 곱게 담아,
먼 훗날 내 가슴의 터엔 회한의 먼지만이 붐비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
'빛나는세상 > 출석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언제 한번 보자 / 김언 (0) | 2021.11.17 |
---|---|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 정현종 (0) | 2021.11.16 |
책꽂이를 치우며 / 도종환 (0) | 2021.11.14 |
아내와 나 사이 / 이생진 (0) | 2021.11.13 |
가을 손 / 이상범 (0) | 2021.1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