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언제 한번 보자 / 김언

믈헐다 2021. 11. 17. 01:45

언제 한번 보자 / 김언

 

  삼월에는 사월이 되어 가는 사람. 사월에는 오월이 되어 가는 사람. 그러다가 유월을 맞이해서는 칠월까지 기다리는 사람. 팔월까지 내다보는 사람. 구월에도 시월에도 아직 오지 않은 십일월에도 매번 기다리다가 지나가는 사람. 우리가 언제 만날까? 이걸 기약하느라 한 해를 다 보내고서도 아직 남아 있는 한 달이 길다. 몹시도 길고 약속이 많다. 우리가 언제 만날까? 기다리는 사람은 계속 기다리고 지나가는 사람은 계속 지나간다. 해 넘어가기 전에 보자던 그 말을 해 넘어가고 나서 다시 본다. 날 따뜻해지면 보자고 한다.

 

*출처: 김언 시집 『백지에게』, 민음사, 2021.

*약력: 1973년 부산 출생, 부산대학교 산업공학과와 국어국문학과 졸업,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

(우리나라 최초의 전화기인 ‘덕률풍德律風’, 1896년 10월 덕수궁 내 설치)

우리는 종종 이런 전화 통화를 한다.

“그냥 보고 싶어서 전화 했어”, “그래 우리 다음에 한번 보자”

의미 없이 농담을 하고 의미 없이 정을 주고받는다.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의미를 두지 않고 살아간다.

이렇게 무의미하게 삶은 반복된다.

무의미하게 하루가 가고 무의미하게 계절이 바뀌고 무의미하게 한 해가 간다.

무의미는 반복되고 의미 있는 것은 반복되지 않는다.

시인은 우리에게 무의미하게 화두를 던진다.

언제 한번 보자는 말이 무의미하지만 지독하게 슬픈 말이기도 하고 그리운 말이기도 하다.

 

*참고

‘한번’ ‘한√번’은 그 의미가 다르다.

‘한번’은 지난 어느 때의 기회나, 어떤 일을 시험 삼아 시도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한√번’은 차례나 일의 횟수를 나타내는 경우에 쓰는 말이다. ‘한√번’, ‘두√번’, ‘세√번’과 같이 띄어 쓴다.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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