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도무지 슬프지 않은 어떤 시간 속에서 / 고형렬

믈헐다 2022. 5. 6. 00:09

도무지 슬프지 않은 어떤 시간 속에서 / 고형렬

 

아기였을 때는 항상 어머니와 함께 잤고

소년 때는 늘 홀로된 할머니 곁에서 잤는데

총각 때는 혼자 자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는

언제나 아내와 함께 잤다

책을 손에 쥐고 잠든 적도 없지 않지만

잠은 어떤 시간의 사이에서 잠시 빌린 것이었다

앞으론 누구와 함께 잘 일이 없어졌다

그러니까 나에게 잠을 대줄 사람이 없다

나는 앞으로 매일 밤

혼자서 잘 일이 걱정이다

아침까지 밤을 건너가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안전하게 지구와 달이 데려다주겠지만

나는 앞으로

조금씩 더 어두워져갈 나를 껴안고 잘 것이다

먼 별밤이 되어 돌아올 일은 없을 것 같다

 

*출처: 고형렬 시집 오래된 것들을 생각할 때에는, 창비, 2020.

*약력: 1954년 강원도 속초 출생, 창비 편집부장과 명지전문대학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역임.

 

 

아기였을 때는 어머니 곁에서, 소년이었을 때는 할머니 곁에서 잠을 잤다.

총각 때는 혼자 자다가 결혼 후는 아내와 함께 잠을 잤다.

그러나 언젠가는 혼자 잠을 자야 한다는 것을 걱정한다.

잠은 시간의 사이에서 잠시 빌린 시간이긴 하나 홀로 잠잘 일은 참 외로울 것이다.

지난날 내 옆에 누군가가 있어 더없이 아름다웠을 잠의 시간이지 않은가.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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