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 / 강건늘
퇴근길
가랑비와 함께 흐느적거리며 걷는다
가난한 아버지들의 구부정한 어깨를 하고
비처럼 한쪽 어깨는 사선으로 기울고
시한부 진단을 받고 나오는 사람처럼
헐거운 양복 헐거운 우산
헐거운 버스에 겨우 오른다
뾰족구두가 꾸욱
발을 밟고 지나간다
미안하단 말도 없이
언제나 그렇듯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그러거나 말거나
기둥 하나를 겨우 잡고
모든 걸 그만두고 싶은데
그럼 어쩌나
무얼 해서 먹고 사나
부모님 얼굴은 어찌 보나
그럼 어쩌나
그럼 어쩌나
집에 오자마자 쓰려져 잠이 드는데
한 시간쯤 자고 일어나니 허기는 찾아와
국수를 끓인다
하얀 소면이 끓고
착하디착한 연약한 국수를
따뜻한 국물에 말아
후룩 후룩
후루루 후루루
아
기운이 좀 난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조금은 더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흐물흐물한 국수 가락이
나를 일으킨다
*출처: 강건늘 시집 『잠만 자는 방 있습니다』, 달아실, 2021.
*약력: 1978년 경기도 포천 출생(男),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6년 『시인동네』로 등단.
누구나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몸도 마음도 무겁기 마련이다.
하물며 집에 돌아가는 길에서도 사람들에게 치이고 말았으니 오죽하겠는가.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은 하루에도 열두 번은 들겠지만 부모님 생각에 어쩌지도 못하는 현실이다.
피곤에 지친 화자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쓰러져 잠이 들었다가 깨고 보니 허기가 찾아온다.
사람은 생리적 현상 때문에 생기는 감정의 변화는 여타 다른 감정보다 단순하다.
따뜻한 음식 한 그릇이면 지친 몸과 마음을 가볍게 만드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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