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파란 달 아래 / 박덕규

믈헐다 2022. 11. 20. 10:20

파란 달 아래 / 박덕규

 

보름달 큰 동그라미 윤곽이 그대로 남았는데

어느새 반쪽

하현달이다.

 

저 하늘에조차 무릎 끓지 않으리라던

젊음

메아리쳐 오는 기척 아직 없고

 

의리를 지키느라 구부러진 손가락

닮은 나뭇가지

눈을 찌른다.

 

*출처: 박덕규 시집 골목을 나는 나비, 서정시학, 2014.

*약력: 1958년 대구에서 성장, 경희대학교 국문과 졸업.

 

 

화자의 젊음은 둥글고 환한 보름달과도 같았는데,

중년이 되니 반쪽 하현달의 모습으로 기우는 것을 깨닫는다.

어느 날 푸른 달 아래 서면 문득 그러한 젊음으로부터 너무 멀리 떠밀려온 자신을 발견한다.

새삼스럽게 이런 자각을 하는 날이면 지난날의 회한이 밀려올 수밖에 없다.

젊은 시절은 저 푸르고 높디높은 하늘에조차 무릎 끓지 않으려는 오기와

세상의 의리란 의리 모두 다 지킬 듯이 세상을 향해 나대던 시절이었다.

그러한 무모함이 끝내 올려다보던 눈만 찔리듯이 아플 뿐이라는 것을 어찌 알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