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듀오 / 김영진
목욕탕에 다녀오시나, 할머니 두 분
껍질 벗긴 삶은 계란마냥
하얗고 말간 얼굴로
서로 정담 나누시며 걷는다
동생, 이제 집에 가면 뭐 할랑가?
뭐 하긴요, 시장에나 갈라요
장에는 뭐 하러 갈라고 그란가?
영감 팔러 갈라 그라요
엥, 얼마에 팔라고 그란디?
오천만 원만 주면 팔라고 그라요
오메야, 팔릴랑가 모르것네
그란디 그 돈 받으면 어디따 쓸라고?
천만 원짜리 영감 있으면 바꿀라고 그라요
목욕 바구니 나란히 든 두 분
구부러진 등 위로 햇살이
깔깔깔 빛난다
*출처: 김영진 시집 『영구임대아파트 입주 문의』, 시인동네, 2021.
*약력: 1973년 전남 화순 출생, 2017년 계간 《시와사람》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 시작.
현재 사회복지사.
할머니들이 목욕 바구니를 들고 길을 걸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은
시골 동네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시인은 이것을 이중주로 연주하는 소나타 형식의 악곡인 '듀오(duo)'에다 비유하였다.
이제 집에 가면 뭐 할 거냐는 물음에 시장 간다고 답하면서 대화는 이어진다.
영감 팔러 시장에 간다는 우스갯소리지만 실상은 영감이 좋아하는 먹을거리를 살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구부러진 등 위로 어찌 햇살이 깔깔깔 빛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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