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할머니 듀오 / 김영진

믈헐다 2022. 11. 19. 23:05

할머니 듀오 / 김영진

 

목욕탕에 다녀오시나, 할머니 두 분

껍질 벗긴 삶은 계란마냥

하얗고 말간 얼굴로

서로 정담 나누시며 걷는다

 

동생, 이제 집에 가면 뭐 할랑가?

뭐 하긴요, 시장에나 갈라요

장에는 뭐 하러 갈라고 그란가?

영감 팔러 갈라 그라요

엥, 얼마에 팔라고 그란디?

오천만 원만 주면 팔라고 그라요

오메야, 팔릴랑가 모르것네

그란디 그 돈 받으면 어디따 쓸라고?

천만 원짜리 영감 있으면 바꿀라고 그라요

목욕 바구니 나란히 든 두 분

구부러진 등 위로 햇살이

깔깔깔 빛난다

 

*출처: 김영진 시집 영구임대아파트 입주 문의, 시인동네, 2021.

*약력: 1973년 전남 화순 출생, 2017년 계간 시와사람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 시작.

현재 사회복지사.

 

 

할머니들이 목욕 바구니를 들고 길을 걸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은

시골 동네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시인은 이것을 이중주로 연주하는 소나타 형식의 악곡인 '듀오(duo)'에다 비유하였다.

이제 집에 가면 뭐 할 거냐는 물음에 시장 간다고 답하면서 대화는 이어진다.

영감 팔러 시장에 간다는 우스갯소리지만 실상은 영감이 좋아하는 먹을거리를 살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구부러진 등 위로 어찌 햇살이 깔깔깔 빛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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