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 허은실
곡기를 끊고
누운 사람처럼
대지는 속을 비워가고
바람이
그 꺼칠한 얼굴을
쓸어본다
돌아누운 등 뒤에
오래 앉았는 이가 있었다
아― 해봐요 응?
마른 입술에
떠넣어주던
흰죽
세상에는 이런 것이 아직 있다
*출처: 허은실 시집 『회복기』, 문학동네, 2022.
*약력: 1975년 강원도 홍천 출생, 서울시립대학교 국문과 졸업, 라디오 프로그램 작가 활동.
식물이나 동물은 생존을 위해 활동을 최소화하거나 아예 겨울잠을 잔다.
그것이 마치 "곡기를 끊고 / 누운 사람”"같이 생기를 잃은 것 같지만
실상은 겨울이 지나지 않고 어찌 봄이 오랴, 자연의 섭리이다.
그렇지만 시인은 속이 빈 대지가 안타까워 첫눈을 흰죽에 대비하여 떠먹인다.
"세상에는 이런 것이 아직 있다"
첫눈은 상서로운 눈이니 복되고 길한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시인의 따뜻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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