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826

마을버스 / 김선호

마을버스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고 비만 몰려온다 정류장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차가 오는 곳을 바라보고 있다 빗줄기가 강해지자 몸을 가까이 붙이며 처음부터 마음은 같았다는 듯 일제히 같은 곳으로 향해 있다 사랑이란, 나란히 어깨를 대고 한곳을 바라보는 일. 버스가 도착하자 흩어지는 빗방울처럼 노선을 따라 각자의 길로 떠난다 *출처: 김선호 시집 『오래된 책장』, 천년의 시작, 2018. (밀양 위양지 퇴로마을 버스정류장)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고 비가 몰려와 비좁은 정류장에서 비를 피한다. 그곳에서 화자는 ‘사랑이란 나란히 어깨를 대고 한곳을 바라보는 일이다.'라고 정의를 내린다. 그러나 버스가 도착하면 흩어지는 빗방울처럼 각자의 길로 떠날 수밖에 없는, 만남과 헤어짐을 토로하기도 하나 시의..

석산꽃 / 박형준

석산꽃 한 몸 속에서 피어도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해 무덤가에 군락을 이룬다 당신이 죽고 난 뒤 핏줄이 푸른 이유를 알 것 같다 초가을 당신의 무덤가에 석산꽃이 가득 피어 있다 ㅡ나는 핏줄처럼 당신의 몸에서 나온 잎사귀 죽어서도 당신은 붉디붉은 잇몸으로 나를 먹여 살린다 석산꽃 하염없이 꺾는다 꽃다발을 만들어 주려고 꽃이 된 당신을 만나려고 *출처: 박형준 시집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문학과 지성사, 2011. (출처: 야생화백과사전) 석산(石蒜)은 꽃무릇의 또 다른 이름이다. 꽃무릇은 꽃대가 먼저 나와 꽃이 먼저 피고 잎은 나중에 핀다. 잎과 꽃은 서로 볼 수가 없으니 그리움의 꽃이라 상사화(相思花)라 한다. 시인은 아버지 무덤가에 핀 석산꽃을 통해, 부모와 자식이 함께 누릴 수 없음의 안타까움을 토..

나무가 바람에게 / 문정희

나무가 바람에게 ​어느 나무나 바람에게 하는 말은 똑같은가 “당신을 사랑해” 그래서 바람 불면 몸을 흔들다가 봄이면 똑같이 초록이 되고 가을이면 조용히 단풍드나봐 *출처: 문정희 시선집 『사랑의 기쁨』, 시월, 2010. (사진은 밀양 위양지 왕버들나무) 바람이 불면 나무가 흔들리고 봄이면 초록색 잎을 틔웠다가 가을이 되면 단풍으로 물든다. 우리의 인생도 바람을 따라 나무처럼 흔들리기도 한다. 내 마음속에 다가온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봄이면 초록의 새잎이 돋고, 황혼이면 단풍으로 물들어 간다.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

선운사에서 / 최영미

선운사에서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출처: 최영미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창비, 2015. (사진은 '선운사' 홈페이지에서 발췌) 이 시는 꽃이 피고 지는 과정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과 헤어짐으로 대응하였다. 이별을 경험한 화자가 선운사의 낙화를 보며, 사랑과 이별을 되돌아보면서 얻게 된 깨달음을 절제된 시어로 표현하였다. ‘선운사’는 전북 고창에 있는 고찰로 예전부터 ‘동백나무 숲’으로 유명한 곳이다. 꽃들은 꽃이 질 때 꽃잎이 하나..

수선화에게 / 정호승

수선화에게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출처: 정호승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열림원, 2011. (봄에 핀 우리 집 화단의 매화와 수선화) 이 시는 인간의 근원적 외로움을 담담한 어조로 노래한다. 화자는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듯이, 외로움이라는 자연스러운 현상에 순응하라고 말한다. 외..

알려드립니다

저는 아주 오래전에 서너 개의 동창 카페에서 활동한 적은 있었으나, 전혀 일면식도 없는 카페에 문을 두드린 것은 지난 5월 중순 경부터입니다. 저는 글을 쓰는 것 외에 여느 님들처럼 재미있는 영상이나 사진 따위를 올리는 재주는 없습니다. 동창 카페는 의무적으로 이미지는 본인 사진, 닉네임은 실명이어야 합니다. 처음 이곳에 가입할 때 이미지 사진을 없앨까 하다가 신뢰를 다짐하는 의미로 그냥 두었습니다. 저는 남의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빛나는 세상 카페의 게시 글과 댓글을 거의 다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카페 지기님은 참 힘들겠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더군요. 특히 대충과는 거리가 먼 수채화지기님의 성격으론 더할 수 없겠다 싶었습니다. 최근 들어 힘들어 하는 모습이 역력히 느껴집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