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못에 걸린 아버지 / 김정희

믈헐다 2021. 10. 21. 09:44

못에 걸린 아버지

 

아버지가 후줄근하게 못에 걸려있네

목은 없이 팔 다리만 축 늘어진, 그

 

못에 걸린 아버지가 잠꼬대를 하네

거대한 바람벽에 턱 턱 그를 가로막네

 

너무도 완강하게 박힌 못과

너무도 헐렁헐렁한 아버지

 

허수아비 하나

잠언처럼 걸려있지 저 대못 위로

밤이 훌쩍 지나가고 있네

 

*출처: 김정희의 시집 『산으로 간 물고기』, 문학의전당, 2004.

(사진은 믈헐당이 설정)

 

의 발상 자체가 또 다른 영감을 갖게 한다.

못에 걸린 아버지의 옷을 보고 그 내적인 존재성을 일구어 낸다는 것 자체가 격정의 산물이다.

이 시에서 아버지는 축 늘어진 몸을 이끌고 세상의 벽에 붙어살아야 하는 현실을 잠꼬대로 받아 넘기고 있다.

시인은 아버지의 그 삶을 덜어내고 싶어 눈물로 밤을 지새우었을 것이다.

우리 카페 회원 분의 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문득 이 시가 생각났다.

새로 장만한 양복을 한 번 입어 보지도 못하고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

방 안 벽에 걸린 아버지의 양복을 보면서 가슴 아팠던 사연에 이 시를 소개합니다.

 

*참고

'후줄근하다'는 옷이나 종이 따위가 약간 젖거나 풀기가 빠져 아주 보기 흉하게 축 늘어져 있거나,

몹시 지치고 고단하여 몸이 축 늘어질 정도로 아주 힘이 없다는 뜻.

'잠언(言)'은 가르쳐서 훈계하는 말. ‘시간은 금이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라.’ 따위이다.

‘지새우다’는 고스란히 새우는 것을 말한다.

예문) 며칠 밤을 지새우며... / 긴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지새다’는 달이 사라지면서 밤이 새는 걸 말한다.

예문) 밤이 지새도록 술잔만 기울이고. / 어느덧 날은 지새고...

'지새우다'와 '지새다'는 시인조차 구분하지 못해 빈번하게 혼동하는 단어이다.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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