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놓기 3 / 황동규
반딧불이 하나만 있었으면 하는 밤이 있다.
나의 불 오래 지켜보던 친구의 불빛
조금 전에 깜박 꺼진 밤,
가로등 그대로 땅을 적시고
하늘에는 조각달도 그냥 떠 있다.
마을버스에서 내리는 취객의 발걸음도
그대로다.
그래, 고맙다, 지구, 커다랗고 둥근 곳,
어쩔 줄 몰라 하는 자에게도
서성거릴 시간 넉넉히 준다.
허나 눈앞에 반딧불이 하나 갈 데 없이 떠돈다면
지금이 얼마나 더 지금다울까.
*출처: 황동규 시집 『오늘 하루만이라도』, 문학과지성사, 2020.
*약력: 1938년 평안남도 숙천(肅川)에서 소설가 황순원(黃順元)의 맏아들로 출생.
1946년 가족과 함께 월남해 서울에서 성장.
이후 서울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문리과 영어영문학 학사 및 석사학위 취득.
우리는 우주 속 지구라는 둥근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다.
지구가 둥그니 세상만사는 돌고 도는 것이다.
조금만 손을 놓는다면 서성거릴 시간을 넉넉히 주는 것이리라.
반딧불이 하나 있었으면 하는 외로운 밤도 고마운 일이다.
지금 이 순간을 붙잡고 놓지 않는다고 하여 지금이 얼마나 더 지금다울 것이겠는가.
*출처: 빛나는 세상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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