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발견 / 김안녕
낮과 밤
이불 속으로 눈이 내린다
귓속엔 자벌레들이 혀 짧은 소쩍새 털 많은 사내가 살아
가려운 것투성이
아이비 이파리는 심장 모양
사람 눈에는 그 사람의 심장이 올라와 있다는데
마스크를 쓰고부터는
웃음 비웃음을 다 가릴 수 있고
연습하지 않았는데 연기가 늘고
유일하게 늘지 않는 것은 시와 사랑이다
안 풀리는 4번 문제를 종일 풀고 있다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시를 망친다
마음을 먹는 대신
미움을 먹으려 하지만
마음과 미움은 한 끗 차이이지만
땡감이 비에 떨어지고 무화과 열매가 익고
잠글 수 없는 냄새처럼 열병이 퍼지고
모르는 순간 내게로 건너온 참혹은
물혹이 아니라서 칼로 도려낼 수도 불로 지질 수도 없다
씹자 붙인 껌처럼
사랑만큼 근력이 필요한 종목도 없다
*출처: 김안녕 시집 『사랑의 근력』, 걷는사람, 2021.
*약력: 1976년 경북 고령 출생, 2000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 시작.
사람마다 사랑을 바라보는 마음은 각기 다를 것이나,
‘유일하게 늘지 않은 것은 시와 사랑이다’라는 화자의 말에는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서로가 안 풀리는 4번 문제를 종일 풀고 있다느니,
마음과 미움도 한 끗 차이라는 시어는 너무나 현실적이다.
그 때문에 꿈과 현실에서도 시를 망친다고 하는 화자의 심정이 헤아려진다.
사랑은 언제라도 손쉽게 미움으로 바뀔 수 있기에 감당할 근력이 필요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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