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어머니와 아들 / 이승호

믈헐다 2023. 8. 13. 05:08

어머니와 아들 / 이승호

 

어머니가 학교에 찾아오셨다

생떼를 부리고 간 아들을 위해

도시락을 들고 십 리 먼 길을 걸어오셨다

밭일을 하다 오셨는지 머리 수건을 쓴 어머니는

더없이 촌스러워보였다

“여긴 왜 와, 창피하게”

어머니는 말없이 도시락을 쥐여 주고

발길을 돌려 가셨다

열다섯 살, 철봉대가 뜨끈한 날이었다

 

그 뒤로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나는 그날의 잘못을 빌지 못했다

 

아들의 마음이 이제 이렇게 아픈데

어머니는 얼마나 서글피 울며 가셨을까

 

어머니는 가끔 내 꿈속으로 찾아오신다

어머니, 저는 시를 쓰고 있어요

그래그래, 어머니는 연신 맞장구만 하신다

매번 꿈속에서 나는 차마 그 말을 꺼내지 못한다

 

*출처: 이승호 시집 국경 근처에서 집을 말하다, 들꽃, 2022.

*약력: 2003년 계간 <창작21>로 작품 활동 시작.

 

 

옛말에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있어도 부모에 대한 자식의 사랑은 없다는 뜻이다.

사실 농사 중 자식 농사가 가장 힘들다는 건 누구도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부모가 살아생전에는 그런 것을 모르다가

막상 부모가 돌아가시고 나면 절절히 깨닫게 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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