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아들 / 이승호
어머니가 학교에 찾아오셨다
생떼를 부리고 간 아들을 위해
도시락을 들고 십 리 먼 길을 걸어오셨다
밭일을 하다 오셨는지 머리 수건을 쓴 어머니는
더없이 촌스러워보였다
“여긴 왜 와, 창피하게”
어머니는 말없이 도시락을 쥐여 주고
발길을 돌려 가셨다
열다섯 살, 철봉대가 뜨끈한 날이었다
그 뒤로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나는 그날의 잘못을 빌지 못했다
아들의 마음이 이제 이렇게 아픈데
어머니는 얼마나 서글피 울며 가셨을까
어머니는 가끔 내 꿈속으로 찾아오신다
어머니, 저는 시를 쓰고 있어요
그래그래, 어머니는 연신 맞장구만 하신다
매번 꿈속에서 나는 차마 그 말을 꺼내지 못한다
*출처: 이승호 시집 『국경 근처에서 집을 말하다』, 들꽃, 2022.
*약력: 2003년 계간 <창작21>로 작품 활동 시작.
옛말에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있어도 부모에 대한 자식의 사랑은 없다는 뜻이다.
사실 농사 중 자식 농사가 가장 힘들다는 건 누구도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부모가 살아생전에는 그런 것을 모르다가
막상 부모가 돌아가시고 나면 절절히 깨닫게 되는 것이리라.
'빛나는세상 > 출석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를 구기다 / 장철문 (0) | 2023.08.15 |
---|---|
아내의 잠 / 장철문 (1) | 2023.08.14 |
고독사 / 전윤호 (0) | 2023.08.12 |
밭 한 뙈기 / 권정생 (0) | 2023.08.11 |
엉겅퀴 / 고정국 (0) | 2023.08.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