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어 / 김창균
이 흐린 가을
봉당에 앉아 근심 반 안심 반
반반씩인 마음이 서편 끝까지 다녀오고
집 나간 누구를 기다리는지
옆집에선 한창 전어를 굽는다
깨가 서 말씩이나 들어 있다는 그의 머리가
노릿하게 익어가는 동안
나는 무슨 사리 서 말 사리 서 말
이렇게 중얼거려보곤 하는데
집 나간 누가 돌아오는지
대문 열리는 소리
그 소리에 실려
봉당 한켠에 슬쩍
청단풍 한 잎 들어와 앉는다.
*출처: 김창균 시집 『먼 북쪽』, 세계사, 2009.
*약력: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나 1996년 《심상》으로 등단.
‘전어 굽는 냄새에 나갔던 며느리 다시 돌아온다’는 속담이 있다.
전어 굽는 냄새가 하도 고소해서 시집을 버리고 나가던 며느리가 돌아온다는 뜻이다.
옛말에 ‘홀아비 삼 년에 서캐가 서 말, 홀어미 삼 년에 깨가 서 말’이라 했으니,
아마 시어미가 집 나간 며느리를 기다리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가을은 그리움과 기다림의 계절이랄 수 있다.
마루를 놓지 아니하고 흙바닥 그대로 둔 봉당 한편에
푸른 단풍 한 잎이 들어와도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이겠는가.
'빛나는세상 > 출석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을 지펴야겠다 / 박철 (1) | 2023.10.15 |
---|---|
엽서 / 조인선 (0) | 2023.10.12 |
반올림 - 수림이에게 / 박철 (1) | 2023.10.11 |
가을 잠자리 / 김형영 (1) | 2023.10.10 |
모국어- 내 어머니의 노래 - 윤정 (0) | 2023.1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