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전어 / 김창균

믈헐다 2023. 10. 11. 23:33

전어 / 김창균

 

​이 흐린 가을

봉당에 앉아 근심 반 안심 반

반반씩인 마음이 서편 끝까지 다녀오고

집 나간 누구를 기다리는지

옆집에선 한창 전어를 굽는다

깨가 서 말씩이나 들어 있다는 그의 머리가

노릿하게 익어가는 동안

나는 무슨 사리 서 말 사리 서 말

이렇게 중얼거려보곤 하는데

집 나간 누가 돌아오는지

대문 열리는 소리

그 소리에 실려

봉당 한켠에 슬쩍

청단풍 한 잎 들어와 앉는다.

 

*출처: 김창균 시집 먼 북쪽, 세계사, 2009.

*약력: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나 1996 심상으로 등단.

 

 

‘전어 굽는 냄새에 나갔던 며느리 다시 돌아온다’는 속담이 있다.

전어 굽는 냄새가 하도 고소해서 시집을 버리고 나가던 며느리가 돌아온다는 뜻이다.

옛말에 ‘홀아비 삼 년에 서캐가 서 말, 홀어미 삼 년에 깨가 서 말’이라 했으니,

아마 시어미가 집 나간 며느리를 기다리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가을은 그리움과 기다림의 계절이랄 수 있다.

마루를 놓지 아니하고 흙바닥 그대로 둔 봉당 한편에

푸른 단풍 한 잎이 들어와도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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