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 이향지
바람에 허리 휘어 바람 끝에 섰을지라도
제 의지로 서 있는 것들은 저리도 아름답다.
갈대는 바람을 꺾지 않는다.
누군가의 옷자락에 쓸리며 꺾인
변두리의 슬픔에 내 길이 닿았을 때
겨울 갈대는 꽃으로 서 있는 게 아니었다.
먼지 속에서도 빛을 만나면 제 빛을 녹여
겨울 갈대의 뿌리에 연두 빛 반란의 무리를 전하곤 하는
차디찬 눈 구렁에 섰을지라도,
갈대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출처: 간행물 「갈라진 시대의 기쁜소식」, 우리신학연구소, 2014년 12월호.
*약력: 1942년 경남 통영 출생, 부산대학교 졸업.
갈대는 자연에 순응하듯이 바람에게 온전히 몸을 맡긴다.
바람을 꺾으려 들다가는 갈대의 허리가 먼저 꺾일 것이고,
그렇다고 곁에 서있는 갈대를 붙잡다가는 함께 꺾이고 말 것이다.
"차디찬 눈 구렁에 섰을지라도, / 갈대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이것이 진정 사랑이다.
인간 세상과는 판이하게 다르지 않은가.
'빛나는세상 > 출석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풍경 / 김민채 (0) | 2022.11.24 |
---|---|
애매한 문장은 죄가 되지 못한다 / 이화은 (0) | 2022.11.24 |
겨울이 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 / 이향지 (0) | 2022.11.21 |
파란 달 아래 / 박덕규 (0) | 2022.11.20 |
할머니 듀오 / 김영진 (0) | 2022.1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