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갈대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 이향지

믈헐다 2022. 11. 22. 11:59

갈대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 이향지

 

바람에 허리 휘어 바람 끝에 섰을지라도

제 의지로 서 있는 것들은 저리도 아름답다.

갈대는 바람을 꺾지 않는다.

누군가의 옷자락에 쓸리며 꺾인

변두리의 슬픔에 내 길이 닿았을 때

겨울 갈대는 꽃으로 서 있는 게 아니었다.

먼지 속에서도 빛을 만나면 제 빛을 녹여

겨울 갈대의 뿌리에 연두 빛 반란의 무리를 전하곤 하는

차디찬 눈 구렁에 섰을지라도,

갈대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출처: 간행물 갈라진 시대의 기쁜소식, 우리신학연구소, 201412월호.

*약력: 1942년 경남 통영 출생, 부산대학교 졸업.

 

갈대는 자연에 순응하듯이 바람에게 온전히 몸을 맡긴다.

바람을 꺾으려 들다가는 갈대의 허리가 먼저 꺾일 것이고,

그렇다고 곁에 서있는 갈대를 붙잡다가는 함께 꺾이고 말 것이다.

"차디찬 눈 구렁에 섰을지라도, / 갈대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이것이 진정 사랑이다.

인간 세상과는 판이하게 다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