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풍경 / 김민채

믈헐다 2022. 11. 24. 10:11

풍경 / 김민채

 

처마 밑 황동 금붕어

물 한 모금 못 먹어도

바람 데리고 잘 놀더니

오늘은

꼼짝 않습니다

꽃들도 무슨 일인가

몸 낮추고

바람은 더 아래로 허리 숙이는데

생각 깊어진 퀭한 눈에

달빛이

한 자 반이나 쌓였습니다

 

*출처: 김민채 시집 노랑으로 미끄러져 보라, 상상인, 2022.

*약력: , 2008년 월간 시문학등단, 18회 푸른시학상 수상.

 

 

산사의 처마에 매달은 쇳조각이 새가 아니고 물고기를 매달은 까닭은

물고기는 눈을 감지 않기 때문에 깨어 있는 '수행 의지'를 상징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시인은 그러한 종교적인 해석은 하지 않고,

그저 바람에 매달려 있는 물고기를 찬찬히 관찰할 뿐이다.

처마 밑 물고기는 물 한 모금 먹지 않아도 즐겁게 노래 부르다

바람이 없으니까 꼼짝도 하지 않는다는 거다.

꽃들도 무슨 일이 있는가 하고 몸을 낮추고, 바람은 아예 땅속으로 허리를 숙여버린다.

'생각 깊어진 퀭한 눈에 / 달빛이 / 한 자 반이나 쌓였습니다."

걱정이 된 시인이 찬찬히 들여다본 것이 기막힌 한 편의 시로 탄생한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