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 / 허연
쏟아지는 비를 피해 찾아갔던 짧은 처마 밑에서
아슬아슬하게 등을 붙이고 서 있던 여름밤을
나는 얼마나 아파했는지
체념처럼 땅바닥에 떨어져 이리저리 낮게만
흘러 다니는 빗물을 보며 당신을 생각했는지,
빗물이 파 놓은 깊은 골이 어쩌면 당신이었는지
칠월의 밤은 또 얼마나 많이 흘러가 버렸는지.
땅바닥을 구르던 내 눈물은 지옥 같았던 내 눈물은
왜 아직도 내 곁에 있는지.
칠월의 길엔 언제나 내 체념이 있고
이름조차 잃어버린 흑백영화가 있고
빗물에 쓸려 어디론가 가버린 잊은 그대가 있었다.
여름 날 나는 늘 천국이 아니고,
칠월의 나는 체념뿐이어도 좋을 것
모두 다 절망하듯 쏟아지는 세상의 모든 빗물,
내가 여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출처: 허연 시집 『불온한 검은 피』, 민음사, 2014.
*약력: 1966년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 언론학 석사 학위, 추계예술대학교 박사 학위.
칠월은 일 년 중 가장 더운 달이니 여름의 절정이다.
장마가 끝나면 햇빛에 온갖 열매뿐만 아니라 사람까지도 빨갛게 익기 십상이다.
그렇게 여름이 늘 천국인 사람이 있는 반면에 화자의 칠월은
‘체념’과 ‘흑백영화’와 ‘잊은 그대’가 있다.
과거라는 빗물에 쓸려가 버린 나날들이 흘러가는 빗물 속에서 골을 파고,
문득 당신이 비치기 때문에 여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반어적 표현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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