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포르노그라피 / 박이화
썩은 사과가 맛있는 것은
이미 벌레가
그 몸에 길을 내었기 때문이다
뼈도 마디도 없는 그것이
혼신을 다해
그 몸을 더듬고, 부딪고, 미끌리며
길을 낼 동안
이미 사과는 수천 번의 자지러지는
절정을 거쳤던 거다
그렇게
처얼철 넘치는 당도를 주체하지 못해
저렇듯 달큰한 단내를 풍기는 거다
봐라!
한 남자가 오랫동안 공들여 길들여 온 여자의
저 후끈하고
물큰한 검은 음부를!
*출처: 박이화 시집 『그리운 연어』, 애지, 2006.
*약력: 1960년 경북의성 출생, 본명은 기향(己香), 대구가톨릭대 국어국문학과, 경운대학교 경호학과 대학원 졸업.
이 시를 따로 설명한다는 것은 뱀을 다 그리고 나서
있지도 아니한 발을 덧붙여 그려 넣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
시인이 말하고 있는 그대로 이해하면 될 것이니 말이다.
시인은 ‘에로티시즘(eroticism)’을 남녀가 이성을 그리워하는 데서 출발하여
궁극적으로 성적욕망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라 보는 것이 아닐까.
이 시에서는 음란한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설적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은
성적 이미지들이 감각적, 말초적 묘사에 그치지 않고
인생이라는 원관념의 보조관념으로 충실하기 때문은 아닐까.
*참고
‘포르노그래피pornography’는 인간의 성적(性的) 행위를 묘사한 소설, 영화, 사진, 그림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흔히 ‘포르노’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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