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 / 김수열
예순 살짝 넘긴 며느리가 여든 훌쩍 넘긴 시어매한테 어무이, 나, 오도바이 멘허시험 볼라요 허락해주소 하니 그 시어매, 거 무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여, 얼릉 가서 밭일이나 혀!
요번만큼은 뜻대로 허것소 그리 아소, 방바닥에 구부리고 앉아 떠듬떠듬 연필에 침 발라 공부를 허는데, 멀찌감치 앉아 시래기 손질하며 며느리 꼬라지 쏘아보던 시어매 몸뻬 차림으로 버스에 올라 읍내 나가 물어물어 안경집 찾아 만 원짜리 만지작거리다 만오천 원짜리 돋보기 사 들고 며느리 앞에 툭 던지며 허는 말, 거 눈에 뵈도 못 따는 기 멘허라는디 뵈도 않으믄서 워찌 멘헐 딴댜? 아나 멘허!
*출처: 김수열 시집 『물에서 온 편지』, 삶창, 2017.
*약력: 1959년 제주 출생,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이 시는 “예순 살짝 넘긴 며느리”와 “여든 훌쩍 넘긴 시어매”의
원동기 면허와 관련한 고부간의 갈등과 화해를 다루고 있다.
사실 다 늙어 무슨 오토바이 면허냐고 할런지 모르지만
농촌에서는 대중교통보다는 간편하게 오토바이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며느리는 “요번만큼은 뜻대로 허것소 그리 아소”하고
“방바닥에 구부리고 앉아 떠듬떠듬 연필에 침 발라” 가면서 필기시험 공부를 한다.
시어머니는 무슨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핀잔은 주었어도
나이 먹어 공부하는 며느리가 안쓰럽기도 했을 것이다.
“만 원짜리 만지작거리다 만오천 원짜리 돋보기”를 사는 모습에서
며느리를 향한 시어머니의 사랑이 참 잘 나타나 있지 않은가.
'빛나는세상 > 출석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칠월 / 허연 (0) | 2023.07.03 |
---|---|
건널목 / 나석중 (0) | 2023.07.02 |
볕 좋은 날 / 이재무 (0) | 2023.06.30 |
달개비 / 김형미 (0) | 2023.06.29 |
술값은 내가 냈으니 / 권상진 (0) | 2023.0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