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때리기 / 임수현
한강 고수부지에서 멍때리기 대회가 열린다
돗자리 하나 깔고
눈만 껌벅껌벅
잘하는 게 하나 없는 나도 자신 있다
창밖을 멍하니 보는데
가로등 전깃줄을 타고
고릴라가 휙휙
버스 위에는 좀비 떼가 달라붙어 있다
펼쳐 놓은 책을 선생님이 손가락으로 톡톡
뭐 하니? 물으셨다
선생님 제가 곧 대회에 나갈 거거든요
무슨 대회?
멍때리기 대회요
그런데 자꾸 딴생각이 나요
김민서 쓸데없는 생각 그만하고
다음 페이지 넘겨
넵! 선생님
그러고는 다시 멍
*출처: 임수현 시집 『악몽을 수집하는 아이』, 창비교육, 2022.
*약력: 경북 구미에 살며 푸른빛이 어스름한 금오산을 좋아한다. 2016년 창비어린이 동시 부문 신인문학상, 2017년 시인동네 시 부문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세상에, '멍 때리기 대회'가 있다는 걸 이 시를 통해 알았다.
하여튼 희한한 세상이다.
어떤 작가는 글쓰기에 앞서 멍 때리기부터 한다고 한다.
멍 때리기가 쓰잘머리 있고 없고는 그것을 어떻게 생산하느냐에 달린 것 같다.
창의적인 생각은 정말로 예상치 못한 곳에서 출발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스마트폰에 매몰되는 것보다 가끔은 멍 때리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정신 건강과 창의적인 발상을 위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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