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똥 / 황규관
아침에 싸는 똥은
어젯밤의 내 내력이다
그러니까 몸뚱이의 무늬다
무얼 먹었는지
무슨 맘을 가졌는지
싸웠는지 하하 즐거웠는지
남김없이 보여준다
사랑과 폐허, 그리고 원망과 주저 등을
몸은 끙, 한마디로 말한다
쌓아두지 않는 게 몸의 운명인데
내가 지금껏 한 고백들, 선언들, 다짐들은
모두 무언가에 짓눌려 뱉어진 것이다
그리고 내 업이 되어버렸다
지금껏 그걸 모르고 살았는데
오늘 아침에도 똥은
아무 형식도 없이 쏟아진다
어젯밤에 술 취해 고성을 질렀던
핏대도 아프게 쏟아진다
귀 기울여보면
대체 무엇이 이보다 더 냄새나는 말인가
이 세상에
햇빛이 가닿은 우주 안에
*출처: 황규관 시집 『패배는 나의 힘』, 창비, 2014.
*약력: 1968년 전북 전주 출생, 포철공고 졸업, 1993년 ‘전태일 문학상’에 당선되어 등단.
하루 일과를 참 재미있게 표현을 하였다.
똥은 어제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알고 있다.
내 생활 습관은 건강한지 내 생각은 건전한지 아침마다 확인해 준다.
그러니 “아침 똥”으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까지도 가늠할 수가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비밀을 발설하지 않고
아침마다 나에게 살짝 귀띔해 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빛나는세상 > 출석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을 품다, 무화과 / 정민기 (0) | 2023.08.19 |
---|---|
시는, 시를 견디라며 / 박완호 (0) | 2023.08.19 |
멍때리기 / 임수현 (0) | 2023.08.17 |
시인 / 김남주 (0) | 2023.08.16 |
시를 구기다 / 장철문 (0) | 2023.0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