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아침 똥 / 황규관

믈헐다 2023. 8. 18. 01:36

아침 똥 / 황규관

 

​아침에 싸는 똥은

어젯밤의 내 내력이다

그러니까 몸뚱이의 무늬다

무얼 먹었는지

무슨 맘을 가졌는지

싸웠는지 하하 즐거웠는지

남김없이 보여준다

사랑과 폐허, 그리고 원망과 주저 등을

몸은 끙, 한마디로 말한다

쌓아두지 않는 게 몸의 운명인데

내가 지금껏 한 고백들, 선언들, 다짐들은

모두 무언가에 짓눌려 뱉어진 것이다

그리고 내 업이 되어버렸다

지금껏 그걸 모르고 살았는데

오늘 아침에도 똥은

아무 형식도 없이 쏟아진다

어젯밤에 술 취해 고성을 질렀던

핏대도 아프게 쏟아진다

귀 기울여보면

대체 무엇이 이보다 더 냄새나는 말인가

이 세상에

햇빛이 가닿은 우주 안에

 

*출처: 황규관 시집 패배는 나의 힘, 창비, 2014.

*약력: 1968년 전북 전주 출생, 포철공고 졸업, 1993 전태일 문학상에 당선되어 등단.

 

(수원 '해우제' 박물관 내 '생각하는 사람' 조형물)

 

하루 일과를 참 재미있게 표현을 하였다.

똥은 어제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알고 있다.

내 생활 습관은 건강한지 내 생각은 건전한지 아침마다 확인해 준다.

그러니 “아침 똥”으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까지도 가늠할 수가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비밀을 발설하지 않고

아침마다 나에게 살짝 귀띔해 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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