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고서古書 / 곽종희
오백 년 얽힌 설화 눈으로 읽는 내내
담장 밑 수북 쌓인 편년체 은행잎들
잰걸음 길손을 맞아 고서 정리 바쁘다
책장을 뒤적이다 각주를 다는 바람
쓰다 만 행간 위로 무딘 붓끝 세울 때
보름달 길을 터준다
둥근 등 환히 밝혀
백 년도 못 살면서 아등바등 사는 사이
점자로도 읽지 못해 잠시 접은 우화羽化의 꿈
어둠 속
질라래비훨훨
노랑나비 날고 있다
*출처: 곽종희 시조집 『외로 선 작은 돌탑』, 책만드는집, 2022.
*약력: 경북 영양 출생, 2018년 '나래시조' 신인상 수상, 2021년 중앙시조백일장 장원.
인간은 고작 백 년도 못 살면서 아등바등하지만
마을을 지키는 수백 년의 은행나무와 용문사 은행나무는 천년의 전설을 안고 의연하다.
그것들은 신화, 전설, 민담으로 전해지고 있다.
시인은 유구한 세월을 산 그 은행나무들을 바라보며
"점자로도 읽지 못해 잠시 접은 우화(羽化)의 꿈"이 보름달처럼 떠오른다.
"어둠 속 / 질라래비훨훨 / 노랑나비 날고 있다"니
번데기가 성충이 되어 하늘을 날 듯, 화자의 몸에도 날개가 돋아 훨훨 날지 않겠는가.
*참고
'우화(羽化)'는 번데기가 날개 있는 성충이 됨과 사람의 몸에 날개가 돋아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됨을 이르는 말이다.
'질라래비훨훨'은 어린아이에게 새가 훨훨 날듯이 팔을 흔들라는 뜻으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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