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행 / 정희성
눈이 내린다 기차 타고
태백에 가야겠다
배낭 둘러메고 나서는데
등 뒤에서 아내가 구시렁거린다
지가 열일곱 살이야 열아홉 살이야
구시렁구시렁 눈이 내리는
산등성 숨차게 올라가는데
칠십고개 넘어선 노인네들이
여보 젊은이 함께 가지
앞지르는 나를 불러 세워
올해 몇이냐고
쉰일곱이라고
그중 한 사람이 말하기를
조오흘 때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한다는
태백산 주목이 평생을 그 모양으로
허옇게 눈을 뒤집어쓰고 서서
좋을 때다 좋을 때다
말을 받는다
당골집 귀때기 새파란 그 계집만
괜스레 나를 보고
늙었다 한다.
*출처: 정희성 시집 『돌아다 보면 문득』, 창비, 2008.
*약력: 1945년 경남 창원 출생, 서울대 국문과 졸업.
칠십 고개 넘긴 사람에겐 쉰일곱이 참 젊다.
하물며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의 수명을 자랑하는 나무가 보기엔
인간의 나이타령이 엄살처럼 들릴 것이다.
태백산 주목의 눈에야 다들 참 좋은 때로 보일 것이다.
올해 몇 살이 됐든 지금 나이가 '가장 좋을 때'란 사실을 기억하면서
이제부터라도 마음만은 조로하지 않도록 챙길 일이다.
아내가 볼 땐 쉰일곱 살이 너무 많아 보이고, 노인들의 눈에는 무척이나 젊어 보인다.
유독 "당골집 귀때기 새파란 고 계집만 / 괜스레 나를 보고 늙었다 한다."니
나이 셈법이란 이토록 상대적이지 않은가.
*참고
'고개'는 중년 이후 열 단위만큼의 나이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니,
'칠십고개'는 '칠십√고개'로 띄어 적는 것이 바른 표기이다.
'조오흘 때'는 '좋을 때'의 비표준어로 구어체식 표현이다.
'당골집'은 '무당집'의 전남 방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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