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농담처럼 새고 있다는 것을 / 이성임
나도 알아, 그 어느 쪽으로 기울든 속수무책이라는 걸
하지만 견딜 수 없어 매번 봄이 오고, 나무는 꽃을 피우고
있다는 걸
자신을 그렇게 향기로 달래고 있다는 걸
그러니, 너도 너무 애쓰지 마
잠자리 날개처럼 투명한 바람에게 너를 맡겨봐
오늘 하루가 무너져 내리는 건 내일이 차오르기 위해서라고
애써 그렇게 생각해 봐
너도 알잖니, 네가 좌측으로 기우는 동안 나는 우측으로
기울어간다는 것을
우리 모두 농담처럼 조금씩 새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 이제 너도 너무 가슴 아파하지 마
*출처: 이성임 시집 『나무가 몸을 열다』, 현대시학사, 2022.
*약력: 1961년 전남 장성 출생, 경희 사이버대학교 문창과 졸업,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예술학과 수학.
서로 다른 쪽으로 자라는 나뭇가지의 운명은 그저 속수무책이지만
어김없이 봄은 찾아오고 나무는 꽃을 피우는 것이 평범한 자연의 순리.
사람들이 좌우로 기울어져 서로를 향해 핏대를 올리는 일도
너무 가슴 아파 하지 말고 잠자리 날개처럼 투명한 바람에게 맡기라는 것.
삶에서 만나는 여러 가지 답답한 일들도 가끔은 농담처럼 물이 새듯이
가볍게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다는 말.
삶이란 원래 가야 할 곳으로 가지 아니하고, 농담처럼 조금씩 딴 데로 새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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