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노래방 도우미 / 윤병무

믈헐다 2023. 5. 5. 06:05

노래방 도우미 / 윤병무

 

​딸아이가 초등학교 사학년이라고 했다

노래 한두 곡이 끝날 때마다 그녀는

탬버린을 잠시 내려놓고 눈치껏 답신 문자를 쓴다.

혼자 있는 딸에게

 

낮에도 밤에도 탬버린같이 쉬지 않고 일한다는

그녀는 노래한다

응급차의 경찰차의 소방차의 경광등처럼

불행하게 돌아가는 세상의 여러 불빛처럼

벽을 타고 천장을 타고 바닥을 타고 모서리를 타고

이름 없는 그녀의 마른 가슴 긋고 지나가는

불 빗줄기 속에서 노래한다

 

다시 어둠이 내리면 혼자라는 게 나는 싫ㅡ어

불빛 거리를 헤매다 지쳐버리면 잠이 드ㅡ네*

 

*나미, 「인디언 인형처럼」에서

 

*출처: 윤병무 시집 고단, 문학과지성, 2013.

*약력: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성장, 대전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는 엄마와 사학년 딸아이의 문자 메시지 내용은 어떨까.

"엄마, 지금 어디야"

"엄마는 지금 일하는 중이야"

"언제 와"

"일 마치는 대로 바로 갈게, 먼저 자"

"엄마, 사랑해"

"나도"

딸아이를 혼자 둔 엄마는 오늘도 인디언 인형처럼 힘차게 탬버린을 흔들지만,

웃고 있어도 애간장 타는 속울음은 멈추지 않았을 것이리라.

새벽부터 물 폭탄이 터지는 어린이 날 아침에 이 시를 읽자니 가슴이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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