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백(飛白) / 오탁번
콩을 심으며 논길 가는
노인의 머리 위로
백로 두어 마리
하늘 자락 시치며 날아간다
깐깐오월
모내는 날
일손 놓은 노인의 발걸음
호젓하다
*출처: 오탁번 시집 『비백(飛白)』, 문학세계사, 2022.
*약력: 1943년 충북 제천 출생,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23년 2월 14일 타계.
이 시는 한 폭의 동양화를 감상하는 것 같다.
비백(飛白)은 후한 때 서예가 채옹이 만든 서체이다.
서예 십체(十體) 중 하나인 비백은 획 안에 흰 여백을 품고 먹물이 묻지 않게
희끗희끗 건너가는 수법으로 여유로움과 조화로움을 보여주는 걸 말한다.
우리 인생도 이 시처럼 여백의 삶이 필요하다.
"일손 놓은 노인의 발걸음"을 따라가 보면
잠시라도 아등바등 사는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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