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비백(飛白) / 오탁번

믈헐다 2023. 5. 4. 05:35

비백(飛白) / 오탁번

 

콩을 심으며 논길 가는

노인의 머리 위로

백로 두어 마리

하늘 자락 시치며 날아간다

 

깐깐오월

모내는 날

일손 놓은 노인의 발걸음

호젓하다

 

*출처: 오탁번 시집 비백(飛白), 문학세계사, 2022.

*약력: 1943년 충북 제천 출생,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23 2 14일 타계.

 

 

이 시는 한 폭의 동양화를 감상하는 것 같다.

비백(飛白)은 후한 때 서예가 채옹이 만든 서체이다.

서예 십체(十體) 중 하나인 비백은 획 안에 흰 여백을 품고 먹물이 묻지 않게

희끗희끗 건너가는 수법으로 여유로움과 조화로움을 보여주는 걸 말한다.

우리 인생도 이 시처럼 여백의 삶이 필요하다.

"일손 놓은 노인의 발걸음"을 따라가 보면

잠시라도 아등바등 사는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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