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지나가시고 / 송진권
그렇지
마음도 이럴 때가 있어야 하는 거라
소나기 한 줄금 지나가시고
삽 한 자루 둘러메고 물꼬 보러 나가듯이
백로 듬성듬성 앉은 논에 나가 물꼬 트듯이
요렇게 툭 터놓을 때가 있어야 하는 거라
물꼬를 타놓아 개구리밥 섞여 흐르는 논물같이
아랫배미로 흘러야지
속에 켜켜이 쟁이고 살다보면
자꾸 벌레나 끼고 썩기나 하지
툭 타놓아서 보기 좋고 물소리도 듣기 좋게
윗배미 지나 아랫배미로
논물이 흘러 내려가듯이
요렇게 툭 타놓을 때도 있어야 하는 거라
*출처: 송진권 시집 『원근법 배우는 시간』, 창비, 2022.
*약력: 충북 옥천 출생, 옥천고등학교 졸업 후 역무원으로 근무, 창비 신인문학상(2004)으로 등단.
소나기가 한차례 지나가고 나면 백로가 여기저기 내려앉은 들녘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농부는 물꼬를 열어서 아랫배미로 흘려보내니 그 소리가 속이 확 터이듯 시원스럽다.
그렇기에 시인은 논에 물꼬를 열어 넘치는 물을 흘려보내듯이 사람의 마음도 그러길 바란다.
충청도 사람의 구수한 말투와 운율이 마치 소리꾼의 타령 소리로 들리는 듯하고,
이곳저곳을 떠돌며 노래하는 음유 시인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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