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어주는 사람 / 이덕규
오래전에 냇물을 업어 건네주는 직업이 있었다고 한다
물가를 서성이다 냇물 앞에서 난감해하는 이에게 넓은 등을 내주는
그런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선뜻 업히지 않기에
동전 한 닢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업히는 사람의 입이 함박만해졌다고 한다
찰방찰방 사내의 벗은 발도 즐겁게 물속의 흐린 길을 더듬었다고 한다
등짝은 구들장 같고
종아리는 교각 같았다고 한다
짐을 건네주고 고구마 몇 알
옥수수 몇 개를 받아든 적도 있다고 한다
병든 사람을 집에까지 업어다 주고 그날 받은 삯을
모두 내려놓고 온 적도 있다고 한다
세상 끝까지 업어다주고 싶은 사람도 한 번은 만났다고 한다
일생 남의 몸을 자신의 몸으로 버티고 살아서
일생 남의 몸으로 자신의 몸을 버티고 살아서
그가 죽었을 때, 한동안 그의 몸에 깃든
다른 이들의 체온과 맥박을 진정시키느라 사람들이 애를 먹었다고 한다
*출처: 이덕규 시집 『오직 사람 아닌 것』, 문학동네, 2023.
*약력: 1961년 경기도 화성 출생, 199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조선 시대 때 사람을 업어서 내를 건네주는 '월천꾼(越川꾼)'이 있었다.
만약 조선 시대의 극한 직업 이야기로만 끝냈다면 시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죽었을 때, 한동안 그의 몸에 깃든 / 다른 이들의 체온과 맥박을 진정시키느라 사람들이 애를 먹었다고 한다"는 마지막 연이 한 편의 멋진 시로 탄생하였다.
업어주는 사람과 업히는 사람의 관계는 어찌 보면 '내리사랑'과 '치사랑'으로 비교할 수 있다.
마치 따뜻한 등으로 우리를 업어 키운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처럼 말이다.
그러니 업어주는 사람의 존재는 세상에서 가장 감사한 일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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