넝마주이 사랑법 / 정채원
시간의 넝마를 주워다
솔기를 꿰매고 속을 채우고
너와 꼭 닮은 인형을 만든다
너의 숨소리까지 들리는 듯
내가 잠들면 너는 깨어나
오래된 서랍을 열고 꽃을 피운다
네가 쓰러져 있는 동안
나는 잠시 맑은 정신으로 창문을 닦고
책상 앞에 앉는다
바람 없는 날에도
네 옆구리에서 모래가 흘러내리고
젖은 한쪽 팔이 물풀처럼 휘적이다
바닥으로 툭 떨어져 내리고
우리의 백년 묵은 천년 묵은 넝마까지 구해 와
네 찢어진 상처에 덧대고 꿰매는 밤
바늘이 지나가는 곳
피가 번지는 곳은 내 가슴이다
*출처: 정채원 시집 『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천년의시작, 2022.
*약력: 1951년 서울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시인은 나를 시간을 줍는 넝마주이 사람으로 표현하여
밤은 낮 동안 만들어진 상처를 꿰매는 치유의 시간으로 자각하고 있다.
또한 밤과 낮, 즉 나와 너는 서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너는 나의 내면이고 나는 너의 외면이며, 나와 너의 안팎이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애초부터 '나와 너'는 상호 의존 관계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우리의 백 년 묵은 천년 묵은(오랜 세월) 역사와 기억을 공유해온 '시간의 낡고 해진 것(넝마)'까지 구해와
너의 상처를 꿰매주는 것이 "넝마주이 사랑법"이라고 노래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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