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준다 / 손현숙
연애 고수에게 비결을 물었더니 잘 주고받기란다 피구 게임에서도 몸을 살짝 뒤로 빼면서 공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주고받기만을 잘하면 쇳덩이라도 가벼운 법이라는데,
나무껍질처럼 생긴 목수 아저씨 못 하나 입에 물고 한참을 중얼거린다 장미나무 찻장을 앞에 세워놓고 “꽃 줄게, 꽃 받아라” 문짝을 달랜다, 나무의 결 따라 못질한다
심하게 어깃장 놓던 장미 찻장이 거짓말처럼 부드럽다 못은 망치로 때려 박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깨지면서 당신아, 어쩌자고 우리는 몸을 주고받아 새끼를 나눠 갖게 되었을까
그나저나 눈 깜짝할 새 방바닥에 쓰러져서 돌아가신 아버지 어디 가서 도로 몸을 받아 오나 너를 덜어 나를 채우는 여기, 꽃잠이 밀려와 하품한다, 생글거리며 횡격막을 연다
*출처: 손현숙 시집 『일부의 사생활』, 시인동네, 2018.
*약력: 1959년 서울 출생, 신구대학 사진과 · 한국예술 신학대학 문창과 졸업,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문학박사.
사랑을 이렇게 상스러움 하나 없이 우아하게 은유할 수 있다는 것에 감탄스럽기 그지없다.
솔직히 남녀 간의 사랑이란 몸을 주고받는 일이라 하여도 틀린 말은 아닐것이다.
그렇기에 사랑은 공을 주고받는 피구 게임을 닮았다고 말한다.
몸을 뒤로 빼지 않고 공을 받다가는 자칫 공을 놓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목수는 오래 써서 뒤틀린 장미나무 찻장에 못을 박으면서 "꽃 줄게, 꽃 받아라"라고 말한다.
못 하나를 박는데도 어르고 달래며 저토록 기품이 있으니 어찌 못이 쉽게 들어가지 않겠는가.
그나저나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아버지이니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처럼
사랑을 나누는 그 순간은 꽃잠이 밀려오고 횡격막(배와 가슴 사이)이 생글거릴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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