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 정일근
종이 울리는 것은
제 몸을 때려가면서까지 울리는 것은
가 닿고 싶은 곳이 있기 때문이다
둥근 소리의 몸을 굴려
조금이라도 더 멀리 가려는 것은
이목구비를 모두 잃고도
나팔꽃 같은 귀를 열어 맞아주는
그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앞선 소리의 생이 다하려 하면
뒤를 따라온 소리가 밀어주며
조용히 가 닿는 그곳
커다란 소리의 몸이 구르고 굴러
맑은 이슬 한 방울로 맺히는 그곳
*출처: 정일근 시집 『경주 남산』, 문학동네, 1998.
*약력: 1958년 경남 진해 출생, 경남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과 졸업.
소리를 내는 종은 흔드는 종과 때리는 종이 있다.
가능한 한 세차게 흔들거나 때려야만 소리의 울림은 더 클 것이다.
그것을 시인은 "가 닿고 싶은 곳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당연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행간에 숨겨진 뜻은 다른 데 있다.
그 울림이 "맑은 이슬 한 방울로 맺히는 그곳"이라고 하니
불가에서는 혼탁한 세상에 위안과 경종을 주기 위함일 것이고,
기독교에서는 하느님의 도리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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