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산이 / 이성선
산을 가다가 물을 마시려고
샘물 앞에 엎드리니
물속에 능선 하나
나뭇가지처럼 빠져 있다
물마시고 일어서자
능선은 물속에도 하늘에도 없다
집에 돌아와 자는데
몸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들여다보니
내장까지 흘러들어간 능선에서
막 달이 솟는 소리
그때부터다
내 골짜기 새 울고 천둥치고
소나무 위 번개 자고 밤에 짐승 걷고
노루귀꽃 고개 들어 가랑잎 안에 해가 뜬다
내 안에 산이 걸어간다
*출처: 이성선 시집 『물방울 우주』, 황금북, 2002.
*약력: 1941년 강원도 고성군 출생, 고려대학교 농과대학 졸업, 동 대학원 국어교육 석사.
2001년 타계.
산은 언제나 따뜻하게 품어주기 때문에 어머니의 품으로 비유하며,
아무 말 없이 받아주고 안아주는 산은 늘 그 자리에 그렇게 있다.
그렇듯 내 안에 산이 걸어가는 것처럼 산을 가슴에 담고 사는 사람도 그럴 것이다.
"내 골짜기 새 울고 천둥치고 / 소나무 위 번개 자고 밤에 짐승 걷고 /
노루귀꽃 고개 들어 가랑잎 안에 해가 뜬다"니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마치 내 안에서도 산이 걸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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