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점 해봐, 언니 / 김언희
한 점 해봐, 언니, 고등어회는 여기가 아니고는 못 먹어. 산 놈도 썩거든, 퍼덩퍼덩 살아 있어도 썩는 게 고등어야, 언니, 살이 깊어 그래, 사람도 그렇더라, 언니,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어도 썩는 게 사람이더라, 나도 내 살 썩는 냄새에 미쳐, 언니, 이불 속 내 가랑이 냄새에 미쳐, 마스크 속 내 입 냄새에 아주 미쳐, 언니, 그 냄샐 잊으려고 남의 살에 살을 섞어도 봤어, 이 살 저 살 냄새만 맡아도 살 것 같던 살이 냄새만 맡아도 돌 것 같은 살이 되는 건 금세 금방이더라, 온 김에 맛이나 한번 봐, 봐, 지금 딱 한철이야, 언니, 지금 아님 평생 먹기 힘들어, 왜 그러고 섰어, 언니, 여태 설탕만 먹고 살았어?
*출처: 김언희 시집 『보고 싶은 오빠』, 창비, 2016.
*약력: 1953년 경남 진주 출생, 경상대학교 외국어교육학과 졸업, 198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에서 말하는 언니는 누굴까.
친언니, 오빠의 아내, 나이가 위인 사람에게 정답게 부르는 호칭이라기보다는
사람 관계의 허무함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린다.
어쩌면 썩어가는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내뱉는 말일 수도 있고,
꽃길과 가시밭길을 번갈아 걷는 희로애락의 생애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 "이 살 저 살 냄새만 맡아도 살 것 같던 살이 냄새만 맡아도 돌 것 같은 살이 되는 건 금세 금방"이니만큼
더 썩기 전에 지금을 더 사랑하며 살아야하지 않겠는가.
'빛나는세상 > 출석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투계 / 고성만 (1) | 2023.05.30 |
---|---|
흠이라는 집 / 권상진 (0) | 2023.05.29 |
파리 손님 / 조경숙 (0) | 2023.05.27 |
공공도서관 / 전윤호 (1) | 2023.05.26 |
내 안에 산이 / 이성선 (0) | 2023.05.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