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흠이라는 집 / 권상진

믈헐다 2023. 5. 29. 03:13

흠이라는 집 / 권상진

 

상처라는 말보다는

흠집이란 말이 더 아늑하다

 

마음에, 누가 허락도 없이

집 한 채 지어 놓고 간 날은

종일 그 집 툇마루에 걸터앉아

홀로 아득해진다

 

몇 날 며칠

부수고 허물어낸 빈터에

 

몇 번이고 나는,

나를 고쳐 짓는다

 

*출처: 권상진 시집 노을 쪽에서 온 사람, 걷는사람, 2023.

*약력: 1972년 경북 경주 출생, 2013 전태일 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 시작.

 

(정호승 시인의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전문)


당한 것이 상처라면 흠은 당함과 더불어 스스로 부족하여 생길 수도 있으니,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흠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시인은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에서 ‘흠집’을 짓는다.

"상처라는 말보다는 / 흠집이란 말이 더 아늑하다"고 했지만 실상은 그렇겠는가.

상처 받은 마음을 종일 흠집이란 "툇마루에 걸터앉아 / 홀로 아득해진다"고 했다.

화를 삭이며 상처 이전의 마음 상태로 되돌리려 흠집을 몇 날 며칠

"부수고 허물어낸 빈터에 // 몇 번이고 나를 고쳐 짓는다"

상대를 탓하기보다 자신의 부족과 허물을 반성하니, 

비로소 고쳐 지은 흠집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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