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이라는 집 / 권상진
상처라는 말보다는
흠집이란 말이 더 아늑하다
마음에, 누가 허락도 없이
집 한 채 지어 놓고 간 날은
종일 그 집 툇마루에 걸터앉아
홀로 아득해진다
몇 날 며칠
부수고 허물어낸 빈터에
몇 번이고 나는,
나를 고쳐 짓는다
*출처: 권상진 시집 『노을 쪽에서 온 사람』, 걷는사람, 2023.
*약력: 1972년 경북 경주 출생, 2013년 ‘전태일 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 시작.
당한 것이 상처라면 흠은 당함과 더불어 스스로 부족하여 생길 수도 있으니,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흠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시인은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에서 ‘흠집’을 짓는다.
"상처라는 말보다는 / 흠집이란 말이 더 아늑하다"고 했지만 실상은 그렇겠는가.
상처 받은 마음을 종일 흠집이란 "툇마루에 걸터앉아 / 홀로 아득해진다"고 했다.
화를 삭이며 상처 이전의 마음 상태로 되돌리려 흠집을 몇 날 며칠
"부수고 허물어낸 빈터에 // 몇 번이고 나를 고쳐 짓는다"
상대를 탓하기보다 자신의 부족과 허물을 반성하니,
비로소 고쳐 지은 흠집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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