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일 잡혀 돌아오는 맑은 날 정오 / 송경동

믈헐다 2023. 5. 31. 03:22

일 잡혀 돌아오는 맑은 날 정오 / 송경동

 

오늘은 마누라와 그 짓을 한판

대판해야겠다

흐린 날 사흘에 맑은 날 한나절

일 끊긴 한 달 새

지지고 볶던

사랑의 균열을 이어야겠다

 

밥상에 국물이 올라오도록

국물에 기름기가 뜨도록

바삐 일해야겠다

이자 공과금 아이 먹이

주눅 들던 마누라 근심도

이참엔 확 벗겨 버리자

음울하던 골목 점집 깃발도

한갓지게 흔들리고

모르던 꽃도 피어 날 반긴다

 

어서 가자 어서 가

오늘은 마누라와 그 짓을 땀

뻘뻘 흘리며 해야겠다

지치고 어둔 마음에 볕 한 줄 들도록

사랑의 주사부터 한 대 콱

놓아야겠다

 

*출처: 송경동 시집 꿀잠, 삶이보이는창, 2011.

*약력: 1967년 전남 보성 출생, 2001 내일을 여는 작가 실천문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

 

(수탉이 암탉에게 놓는 사랑의 주사)

 

한 달간이나 일이 끊겨 쉬고 있는 노동자가

"일 잡혀 돌아오는 맑은 날 정오"의 심정을 노래한다.

일이 잡히는 덕에 아버지와 남편으로서 회복되는 과정이라지만

일이 없는 노동자는 사랑의 행위까지도 기를 펼 수 없다는 것이 눈물겹다.

"지치고 어둔 마음에 볕 한 줄 들도록 / 사랑의 주사부터 한 대 콱 / 놓아야겠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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