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잡혀 돌아오는 맑은 날 정오 / 송경동
오늘은 마누라와 그 짓을 한판
대판해야겠다
흐린 날 사흘에 맑은 날 한나절
일 끊긴 한 달 새
지지고 볶던
사랑의 균열을 이어야겠다
밥상에 국물이 올라오도록
국물에 기름기가 뜨도록
바삐 일해야겠다
이자 공과금 아이 먹이
주눅 들던 마누라 근심도
이참엔 확 벗겨 버리자
음울하던 골목 점집 깃발도
한갓지게 흔들리고
모르던 꽃도 피어 날 반긴다
어서 가자 어서 가
오늘은 마누라와 그 짓을 땀
뻘뻘 흘리며 해야겠다
지치고 어둔 마음에 볕 한 줄 들도록
사랑의 주사부터 한 대 콱
놓아야겠다
*출처: 송경동 시집 『꿀잠』, 삶이보이는창, 2011.
*약력: 1967년 전남 보성 출생, 2001년 ‘내일을 여는 작가’와 ‘실천문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
한 달간이나 일이 끊겨 쉬고 있는 노동자가
"일 잡혀 돌아오는 맑은 날 정오"의 심정을 노래한다.
일이 잡히는 덕에 아버지와 남편으로서 회복되는 과정이라지만
일이 없는 노동자는 사랑의 행위까지도 기를 펼 수 없다는 것이 눈물겹다.
"지치고 어둔 마음에 볕 한 줄 들도록 / 사랑의 주사부터 한 대 콱 / 놓아야겠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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