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당신 / 권진희

믈헐다 2023. 6. 10. 05:23

당신 / 권진희

 

​비 내려주어서

한 잔 더 들게 하였다가,

 

당신을 닮은 흰 꽃송이,

송이마다 빗물로 맺혔다가,

 

웅크리고 잠든 내 머리맡에서

밤새 장맛비로 함께 웅크리고 앉았다가

 

새벽강 안개로 몸을 세워서

황토물 거친 물살로 떠나가시는,

 

당신

 

*출처: 권진희 시집 죽은 물푸레나무에 대한 기억, 푸른사상사, 2012.

*약력: 1967년 대구 출생(),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학예술학과 석사, 문예창작학과 박사 과정.

 

 

시적 화자에게 당신은 누구일까.

아내이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건 분명한데,

생이별의 그리움치곤 너무 절절하니 혹여나 사별의 슬픔과 그리움은 아닌지 모르겠다.

생이별이든 사별이든 비가 내리는 날에 마시는 술은 슬픔과 그리움을 더 짙어지게 할 것이다.

이 시에서는 그 슬픔과 그리움에 밤새 잠 못 이루는 화자의 모습이 역력하게 엿보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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