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 / 김기택
과녁에 박힌 화살이 꼬리를 흔들고 있다
찬 두부 속을 파고 들어가는 뜨거운 미꾸라지처럼
머리통을 과녁판에 묻고 온몸을 흔들고 있다
여전히 멈추지 않은 속도로 고무판 두께를 밀고 있다
과녁을 뚫고 날아가려고 꼬리가 몸통을 밀고 있다
더 나아가지 않는 속도를 나무 속에 욱여넣고 있다
긴 포물선의 길을 깜깜한 나무 속에 들이붓고 있다
속도는 흐르고 흘러 녹이 다 슬었는데
과녁판에는 아직도 화살이 퍼덕거려서
출렁이는 파문이 나이테를 밀며 퍼져나가고 있다
*출처: 김기택 시집 『울음소리만 놔두고 개는 어디로 갔나』, 현대문학, 2018.
*약력: 1957년 경기 안양시 출생, 중앙대학교 영문과 졸업. 경희대학교대학원 국문과 박사.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생살이는 과녁에 박힌 화살과 같다는 것이다.
화살 꼬리가 화살촉을 밀며 과녁판을 아무리 뚫고 나아가려고 해도 결국 멈출 수밖에 없다.
퍼덕거리는 화살처럼 생의 속도를 멈출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이긴 하나
목표에 명중한 화살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게 된다.
온몸으로 밀고 나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의지는 끝도 없다지만
"속도는 흐르고 흘러 녹이 다 슬었는데"
욱여넣거나 들이붓는다고 하여 과녁판을 뚫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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