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보 주전자 / 김중일
주전자를 본다
태생부터 얽둑빼기에다 어수룩한 게
볼품이라곤 별로 없다
아내가, 돈을 주고 산 게 아니라
그릇행상에게 고물과 바꾼 것인데
몇 차례 다비를 치를 때마다 화근내가 등천을 해도
그럭저럭 다시 부려먹었다
이제, 아무리 문질러도 묵은 때가 끼어
보는 이들마다 입을 대며 민망해 해도
버리면 발병이라도 날 것 같아
문갑 위에 올려 뒀다
가끔 뚜껑을 열어보면
아내의 비린 세월을 담고 있는 듯
깊은 강江 하나가 출렁인다
*출처: 김중일 시집 『곰보 주전자』, 신생, 2015.
*약력: 1958년 부산 출생, 1999년 『문예사조』를 통해 등단.
얼굴에 굵고 깊게 얽은 자국이 성기다는 "얽둑빼기"
아내가 그릇 행상에게 고물과 바꾼 주전자는 얽둑빼기처럼 곰보주전자가 되었다.
시인은 그런 곰보주전자를 무언가 엄숙한 의식에 사용했던 것처럼 '다비'라고 하며,
가끔 뚜껑을 열어보는 것은 시인의 눈에 보이는 것이 하나 있다.
"아내의 비린 세월을 담고 있는 듯 / 깊은 강(江) 하나가 출렁인다"
함께 살아온 아내의 삶과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