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 권진희
비 내려주어서
한 잔 더 들게 하였다가,
당신을 닮은 흰 꽃송이,
송이마다 빗물로 맺혔다가,
웅크리고 잠든 내 머리맡에서
밤새 장맛비로 함께 웅크리고 앉았다가
새벽강 안개로 몸을 세워서
황토물 거친 물살로 떠나가시는,
당신
*출처: 권진희 시집 『죽은 물푸레나무에 대한 기억』, 푸른사상사, 2012.
*약력: 1967년 대구 출생(男),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학예술학과 석사, 문예창작학과 박사 과정.
시적 화자에게 당신은 누구일까.
아내이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건 분명한데,
생이별의 그리움치곤 너무 절절하니 혹여나 사별의 슬픔과 그리움은 아닌지 모르겠다.
생이별이든 사별이든 비가 내리는 날에 마시는 술은 슬픔과 그리움을 더 짙어지게 할 것이다.
이 시에서는 그 슬픔과 그리움에 밤새 잠 못 이루는 화자의 모습이 역력하게 엿보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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