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르다 / 구재기
우물이 깊을수록
두레박의 끈은 길다
심한 목마름에
한 두레박의 물을 길어 올려도
목마름을 위해서는
한 모금의 물만 필요할 뿐
하늘의 구름 사이
밝은 달이 우물에 빠지면
그때마다 나는 급히 목마르다
서둘러 두레박을 내리지만
끈이 긴 두레박의 물은
쉽게 내 입술에 닿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아
그대가 사랑한다는 말을
아무리 들려주어도, 쉽게
나의 목마름은 가시지 않는다
차라리 깊이 빠져드는
한 덩이 달이 되고 싶다
*출처: 구재기 시집 『목마르다』, 시아북스, 2020.
*약력: 1950년 충남 서천 출생, 1978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초·중·고 40여 년의 교직에서 물러나 〈산애재(蒜艾齋)〉에서 야생화를 가꾸며 살고 있다.
심한 목마름에 두레박으로 물을 긷는다고 다 마시지는 않는다.
기껏해야 몇 모금 갈증해소의 물만 필요할 뿐이다.
사실 우리는 필요한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바란다.
'사랑해'라는 말만 하더라도 그렇다.
말이란 실체가 없듯이 어떤 느낌을 대신한 기호일 뿐이다.
'사랑해'라는 말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하는 사랑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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