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목마르다 / 구재기

믈헐다 2023. 6. 16. 02:10

목마르다 / 구재기

 

우물이 깊을수록

두레박의 끈은 길다

심한 목마름에

한 두레박의 물을 길어 올려도

목마름을 위해서는

한 모금의 물만 필요할 뿐

 

하늘의 구름 사이

밝은 달이 우물에 빠지면

그때마다 나는 급히 목마르다

서둘러 두레박을 내리지만

끈이 긴 두레박의 물은

쉽게 내 입술에 닿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아

그대가 사랑한다는 말을

아무리 들려주어도, 쉽게

나의 목마름은 가시지 않는다

차라리 깊이 빠져드는

한 덩이 달이 되고 싶다

 

*출처: 구재기 시집 목마르다, 시아북스, 2020.

*약력: 1950년 충남 서천 출생, 1978현대시학으로 등단, ··40여 년의 교직에서 물러나 산애재(蒜艾齋)에서 야생화를 가꾸며 살고 있다.

 

 

심한 목마름에 두레박으로 물을 긷는다고 다 마시지는 않는다.

기껏해야 몇 모금 갈증해소의 물만 필요할 뿐이다.

사실 우리는 필요한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바란다.

'사랑해'라는 말만 하더라도 그렇다.

말이란 실체가 없듯이 어떤 느낌을 대신한 기호일 뿐이다.

'사랑해'라는 말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하는 사랑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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