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전혀 끄덕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에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출처: 심순덕 시집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니들북, 2019.
*약력: 1960년 강원도 평창 출생, 2003년 한국문인 등단.
엄마의 삶의 과정을 열거한 이 시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엄마가 자식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했는지 참으로 구체적이다.
그런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했던 화자가 엄마도 딸이란 생각에 닿자
이제 엄마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마지막 행에서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 할 수 있으리라.
*참고
2019년 방영된 KBS2 주말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에서는
극을 마무리하며, 심순덕 시인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시가 삽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