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심순덕

믈헐다 2023. 6. 17. 05:12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전혀 끄덕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에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출처: 심순덕 시집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니들북, 2019.

*약력: 1960년 강원도 평창 출생, 2003년 한국문인 등단.

 

 

엄마의 삶의 과정을 열거한 이 시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엄마가 자식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했는지 참으로 구체적이다.

그런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했던 화자가 엄마도 딸이란 생각에 닿자

이제 엄마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마지막 행에서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 할 수 있으리라.

 

*참고

2019년 방영된 KBS2 주말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에서는

극을 마무리하며, 심순덕 시인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시가 삽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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