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장마 / 정끝별
새파란 마음에
구멍이 뚫린다는 거
잠기고 뒤집힌다는 거
눈물바다가 된다는 거
둥둥
뿌리 뽑힌다는 게
사태지고 두절된다는 거
물벼락 고기들이 창궐한다는 것
어린 낙과(落果)들이
바닥을 친다는 거
마음에 물고랑 파인다는 거
때로 사랑에 가까워진다는 거
울면, 쏟아질까?
*출처: 정끝별 시집 『삼천갑자 복사빛』, 민음사, 2005.
*약력: 1964년 전남 나주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국문학 박사.
'장마'라는 말이 한자어일까, 순우리말일까.
혹자는 '장'은 길 장(長)자이고, '마'는 물의 옛말이라고 하는데,
사전적 의미는 여름철에 여러 날을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현상의 순수한 우리말이다.
매실이 익어 떨어지는 시기하고도 맞아 '매우(梅雨)'라고도 한다지만,
장마라고 어디 제 마음대로 할 수 있겠는가.
일찍 올 수도, 늦게 올 수도, 일찍 끝날 수도, 늦게 끝날 수도,
마치 변덕스러운 사랑처럼 말이다.
출렁이는 마음을 내리는 빗줄기에 맡기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지 않겠는가.
'빛나는세상 > 출석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술값은 내가 냈으니 / 권상진 (0) | 2023.06.28 |
---|---|
반딧불이 / 고영 (0) | 2023.06.27 |
오타 / 하린 (0) | 2023.06.25 |
밤의 미학 / 문익환 (0) | 2023.06.25 |
해돋이 해넘이 / 이혜선 (0) | 2023.0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