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오래된 장마 / 정끝별

믈헐다 2023. 6. 26. 04:13

오래된 장마 / 정끝별

 

새파란 마음에

구멍이 뚫린다는 거

잠기고 뒤집힌다는 거

눈물바다가 된다는 거

둥둥

뿌리 뽑힌다는 게

사태지고 두절된다는 거

물벼락 고기들이 창궐한다는 것

어린 낙과(落果)들이

바닥을 친다는 거

마음에 물고랑 파인다는 거

때로 사랑에 가까워진다는 거

 

울면, 쏟아질까?

 

*출처: 정끝별 시집 삼천갑자 복사빛, 민음사, 2005.

*약력: 1964년 전남 나주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국문학 박사.

 

 

'장마'라는 말이 한자어일까, 순우리말일까.

혹자는 '장'은 길 장(長)자이고, '마'는 물의 옛말이라고 하는데,

사전적 의미는 여름철에 여러 날을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현상의 순수한 우리말이다.

매실이 익어 떨어지는 시기하고도 맞아 '매우(梅雨)'라고도 한다지만,

장마라고 어디 제 마음대로 할 수 있겠는가.

일찍 올 수도, 늦게 올 수도, 일찍 끝날 수도, 늦게 끝날 수도,

마치 변덕스러운 사랑처럼 말이다.

출렁이는 마음을 내리는 빗줄기에 맡기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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